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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사태를 보는 착잡한 시선

지부장 일기 2009/06/29 22:36 posted by 고은태
이란 문제는, 생각할수록 복잡미묘하다.

일단, 현재 학살원흉으로 지목되는 하메이니는 따지고 보면 "미제의 앞잡이" 팔레비를 몰아내고 자주적 정부를 수립한 이란혁명의 정통계승자이다. 그에 반해 시위를 주도하는 세력은, 실상은 그렇지 않다지만 어쨌거나 서방세력이 은근히 선호하는 쪽이다.
이란 사태에 관한 몇가지 생각 - 내맘대로 잡탕블로그

선거결과의 합법성에 이르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현재로써는 아무도 선거가 조작되었다는 증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기존의 지지자 분포에 근거하여 합법적 선거로 보인다, 불법적 선거로 보인다 말은 많지만, 어느 쪽이 옳은지는 오리무중이다. 그러니 어느 쪽이 정당성을 가지고 있는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도 알 도리가 없다.

당연히, 지금의 시위대가 강탈당한 선거결과를 되찾으려는 쪽인지, 아니면 정당한 선거결과를 오해하여, 혹은 불복하여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통해 합법적 정부를 전복하려는 세력인지도 알 수 없다.

즉, 전통적으로 대한민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좋은 편 / 나쁜 편 구도가 전혀 적용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구경만 할 상황은 아니고 무언가 해야 하는데 좋은 편이 없으면 우리 편도 없고, 절실한 연대는 대상을 잃고 떠돈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다 잊는 것이다. 거대한 구도나 논리 따위는 다 빼버리고 상황만 보는 것이다. 기존 정치구도에서 어느 쪽이 선인지 악인지 판단할 생각은 아예 하지 말고, 강대국의 세계전략이나 그에 대항하는 제3세계 민중도 일단 잊고, 심지어는 선거결과가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시위와 이에 대한 유혈진압 만이 남는다. 이 부분은 명확하다. 그리고 판단 가능하다. 누가 옳든 그르든,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이런 진압은 허용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구상 어디라 해도 말이다. 앰네스티의 접근방식이 바로 이런 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앰네스티가 지금 요구하는 것은 이것도 저것도 아니고 단순히 평화적 항의를 허용하고 폭력진압을 멈추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는? 그건 앰네스티가 이래라 저래라 할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지금으로써는.

국내 시민단체들 역시 이란 사태에 대해 발언했다. 내부사정을 모르니 이런 결론이 나기까지 어떤 논의가 오고 갔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메시지는 명쾌하다. 그리고 시기 적절하다. 원칙적으로 지지한다.

이란 정부는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시민들에 대한 탄압과 살해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
첫째, 이란 정부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둘째,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에 대한 가혹한 탄압과 살해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
셋째, 중동 독재자를 지원하고 이라크·아프간을 침략한 미국과 서방 정부는 이란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 없다!

기자회견문 전문읽기


이란 정부는 살인과 탄압을 중단하라! - 꼬(GO)~블로그

그러나 여전히 질문거리가 좀 있다.

첫 번째 요구사항은, 그냥 요구를 들어주고 성심껏 대화하라는 것인가, 아니면 시민들의 요구를 수용하라는 뜻인가. 수용하라는 뜻이라면 민주적 제도개선을 하고 넘어가면 된다는 것인가, 아니면 재선거요구까지를 수용하라는 것인가. 여기서 우리가 선거의 부정여부를 모른다는 것이 다시 한번 문제가 된다. 민주주의는 이란 민중 다수의 요구인지, 아니면 일부 엘리트계층의 요구인지, 혹은 더 나아가 권력분점에 대한 요구인지…

위에 링크 건 블로그에서 친절하게 설명까지 달아놓은 세 번째 요구사항은 좀 더 혼란스럽다. 말할 자격이 없는 것은 맞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침묵하라는 뜻인지. 불행히도 국제사회에서는 침묵 역시 발언이다. 시위대가 죽어가는 것을 보고도 침묵한다면 - 그게 아무리 미국과 서방정부라고 해도 - 국제사회에는 물론 어쩌면 이란 정부나 이란 시민들에게까지 현 정부의 진압에 대한 묵인으로 보일 가능성이 있다. (솔직히 말해, 미국이나 서방정부가 독재를 말하는 것 보다는 민주주의를 말하는 게 그나마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조금은 있다.)

나는 지금, 이란의 불행한 사태를 이용해서 강대국이 이익을 좀 볼까 하는 눈치가 있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런 시도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고민 끝에 적절한 발언을 해준 국내의 단체들을 비판하려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혼란의 와중에서 모든 발언이 완전무결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때로는 긴급한 개입과 발언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순간이 있는 것이고, 지금이 바로 그렇다.

다만 현실이 얼마나 복잡하고 혼란스러운지, 그 속에서 일견 명쾌해 보이는 인권의 기준을 적용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진실의 발견은 힘들고 판단은 더더욱 힘들다. 그래서 앰네스티는 가치판단을 최대한 유보하고 최소한의 것에 마지노선을 치고 최대한의 동의를 얻어 항의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온 것이 아닐까.

앰네스티의 방식이 유일하게 옳은 것은 결코 아니겠지만, 분명히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접근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각자 자신이 처한 한계 속에서 인권침해와 싸우고, 가능하다면 서로가 협력할 수 있는 지점을 발견하여 한걸음씩 함께 나간다면 작은 승리들 속에 언젠가는 큰 변화를 만들어낸 스스로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다시 한번 결론은, 어느 쪽이 좋은 편이든 혹은 나쁜 편이든 상관없이 거리에서 시민들 두들겨 패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설사 좋은 편이라 해도 그래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내 편 네 편을 넘어 이런 기본적인 사실에 동의하고 함께 항의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인권은 존중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앰네스티의 입장과는 전혀 무관한 개인의 의견임을 명확하게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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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민노씨의 생각

    Tracked from minoci's me2DAY  삭제

    강추. 이란사태를 보는 착잡한 시선 (앰네스티일기.2009.6.29) http://amnesty.tistory.com/288 via gyedo님: http://tumblr.com/xte26wxmq

    2009/06/30 08:30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에이치에스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이런 복잡한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할때면, 과연 보편적인 인권이란 존재하는가 하는 고민에 까지 다다르게 됩니다. 보편인권이란게 정말 존재하는 거라면, 이념이나 정치적 배경을 떠나서 모든이에게 설득력이 있고 영향을 끼칠 수 있어야 하겠지요. 하지만 우리가 항상 얘기하는 보편인권이 우리 입맛에 맞고 이야기 하기편한, 정작 실효성은 없는 허상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보편인권을 더 추리고 추려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이건 좀 너무한가요?)

    2009/06/30 00:54
    • BlogIcon 고은태  수정/삭제

      제가 철학이 많이 약해서 존재론에 이르면 할 말이 별로 없기는 한데, 그래도 세상에 '정말' 존재하는 것이 뭐가 있나 싶기는 합니다. 세상의 그 어느 것도 원래부터 정말 존재할 리는 없고, 아마 사람들이 투쟁 속에서 존재하도록 만든 것이 아닐까요? 민주주의가 그렇고, 자본주의도 그럴 테고...

      보편인권은 그래서 존재한다기 보다는 존재해야 하는, 혹은 존재하게 해야 하는 어떤 것이고... 그렇게 됨으로써 돈도 권력도 없는 많은 사람들의 유일한 희망이자 무기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추려야 할지 말아야 할지는 고민해 볼 문제이겠지요.

      앰네스티가 변하지 않는 바위 같지만, 뒤돌아 보면 참 많이 변했거든요. 인권도 그럴 테지요. 인권에 문제제기를 하는 인권활동가가 앰네스티 내에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변화를 이끌어주세요. 열심히 따라 갈테니.

      2009/06/30 08:04
  2. BlogIcon 三魔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이네요~ 잘 봤습니다.

    2009/06/30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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